양재동 세무사의 절세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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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타(전자책,세무조사등포함)

조선시대 양전에서 시작된 과세 행정의 뿌리

양재동세무사 2025. 10. 21. 10:22

조선시대의 조세제도는 단순한 세금 징수가 아니라 국가 행정의 핵심이었습니다.
특히 토지를 측량하고 등급을 나누어 세금을 부과했던 ‘양전(量田)’ 절차는 오늘날 세무조사의 가장 초기 형태로 평가됩니다.


비록 현대처럼 탈세를 적발하거나 장부를 검증하는 개념은 없었지만, 세금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사·기록·판단의 구조가 이미 존재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조선시대의 세금 구조와 양전 절차를 중심으로, 현대 세무조사로 이어지는 행정적 뿌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정리합니다.


1️⃣ 고려·조선시대 ― 세금의 중심은 ‘토지’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지금처럼 소득세나 상속세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세금은 오직 토지 보유 규모를 기준으로 부과되었습니다.
누가 얼마의 땅을 가지고 있는지가 곧 과세 기준이었고, 이를 ‘전세(田稅)’라고 불렀습니다.

조선 초의 과전법(科田法) 은 관료에게 분급된 토지를 기준으로 세금을 거두는 제도였으며,
세종대의 공법(貢法) 은 토지 비옥도와 작황에 따라 세율을 조정했습니다.
이후 영정법(永定法) 으로 통일되어, 흉년과 풍년에 관계없이 일정 세율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즉,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서는 토지의 실태를 정확히 조사하는 행정 절차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2️⃣ 세무조사 대신 존재한 ‘양전(量田)’

조선시대의 세무조사는 오늘날의 탈세 적발 개념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당시의 조사는 토지의 면적과 생산력을 파악해 세금을 정하는 일, 곧 ‘양전’이었습니다.

양전은 전국의 땅을 측량하고, 비옥도·수확량을 평가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세율이 결정되었죠.
법적으로는 20년마다 전국적인 양전을 시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으나,
막대한 인력과 비용 탓에 실제로는 수십 년, 때로는 한 세기가 지난 뒤에야 다시 시행되기도 했습니다.

양전 결과는 모두 문서로 남았고, 이러한 기록이 훗날 세무조사 장부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3️⃣ 토지조사와 세금 부과의 흐름

조선시대의 토지세(전세)는 다음과 같은 단계로 부과되었습니다.

1) 수령이 관할 지역의 토지를 직접 조사
 논밭의 면적과 작황을 파악하여 보고서를 작성.

2) 토지 비옥도에 따라 등급을 구분
 상등전·중등전·하등전으로 나누어 세율을 차등 적용.

3) 수확량에 따라 세율 조정
 풍년에는 더 내고, 흉년에는 덜 내는 탄력적 구조.

4) 서원이 세금 장부(깃기·記記) 작성
 토지 면적, 소유자, 소작인, 납부액 등을 기재.

이러한 장부는 오늘날의 세무조사보고서에 해당하며, 실제 사례로 〈석천원전결원장부(石川院田結員帳簿)〉 같은 문서가 남아 있습니다.
이 기록에는 지역별 토지 현황과 세금 산출 내역이 매우 정밀하게 적혀 있습니다.


4️⃣ 조사에서도 ‘공정성’이 문제였다

조선의 세금 제도는 백성의 생계를 고려한 정책이었지만, 조사를 담당한 수령의 재량이 과도하게 크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기후나 작황이 나쁘면 세금이 줄어들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관리의 판단에 따라 상등전과 하등전이 같은 세금을 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지방관의 부패나 인력 부족으로 인해 조사가 부정확하게 이루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결국 양전은 세금의 근거이자 백성에게는 부담스러운 행정 절차로 인식되었습니다.
오늘날 기업이 세무조사를 두려워하듯, 당시 농민들에게 양전은 가장 현실적인 세무 행정이었습니다.


5️⃣ 상속세·양도소득세는 아직 없었다

조선시대에는 상속세나 양도소득세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토지를 물려주거나 매매할 때 별도의 세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죠.

세금은 오직 현재 보유한 토지에서 발생하는 생산력을 기준으로 부과되었습니다.
재산이 이전되어도 토지 자체가 과세 대상일 뿐, 거래 행위는 세금 부과 사유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상속세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34년, 일제강점기의 「조선상속세령」 제정 때부터이며,
양도차익 과세 역시 1948년 미군정 시절에 이르러 비로소 시행되었습니다.


6️⃣ 세무조사 개념의 태동

조선시대의 세금 조사는 ‘조세 행정’이라기보다 ‘지방 행정’의 일환이었습니다.
세법 위반을 적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세금 부과를 위한 기초 조사에 가까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이미 ‘조사에 기반한 과세’라는 개념이 형성되었습니다.
토지를 실측하고 장부를 작성하며 등급을 매기는 일련의 절차가
오늘날의 세무조사로 발전할 토대를 만든 것입니다.


💡 정리하며 ― 세무조사의 뿌리는 ‘형평과 기록’이었다

조선시대의 세금 제도는 소득세·상속세 중심인 현대 조세체계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토지를 조사하고 기록하며 이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했던 구조는 오늘날의 세무조사 절차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당시의 양전은 단순한 측량 작업을 넘어, 공정한 과세를 위해 사실을 확인하고 기록을 남기는 행정적 과정이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훗날 근대 조세제도와 국세행정 체계로 이어지며, “조사에 기반한 과세”라는 원칙이 자리 잡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정리하면, 조선시대의 양전은 현대 세무조사의 직접적 전신은 아니었지만, 과세의 형평성·기록의 정확성·행정의 일관성을 추구한 초기 형태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시기의 행정적 경험이 축적되면서 이후 근대 세무조사가 제도화되고, 오늘날의 과학적 세무조사 체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